5만원 이하 카드결제액에 대해 서명을 생략하는 제도가 이달 본격 시행됐지만 상당수 식당·슈퍼마켓 등 가맹점은 여전히 서명을 요구하고 있다. 카드사와 결제망구축업체인 밴(VAN)사 간의 수수료 부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은 채 무서명거래를 서둘러 시행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여신금융협회와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 5만원 이하 카드결제액에 대해 무서명거래를 시행했지만 카드가맹점 상당수가 고객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다. 이는 카드단말기를 보급하는 밴사가 프로그램을 수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13개 밴사 측은 프로그램 수정에 돌입했다는 입장이지만 작업 속도가 더디다.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수정해야 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밴사는 현재 5만원 이하 무서명거래와 관련 카드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5만원 이하 무서명거래를 시행하면서 밴사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무서명거래를 시행하면 카드가맹점의 단말기를 관리하고 전표를 매입하는 밴대리점이 상당한 손실을 보게 된다. 이들 밴대리점은 그동안 카드 승인시 발생하는 전표를 매입하고 카드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아왔는데 이러한 매입수수료가 전체 수입의 70%에 달했다. 무서명거래를 하게 되면 이 같은 전표매입이 불필요해져 카드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 밴대리점은 매입 수수료가 단말기 설치·관리에 대한 서비스 비용인 만큼 그동안 받아온 매입수수료를 카드사나 밴사가 보존해달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카드사와 밴사는 서로 상대방이 이를 부담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해 당사자 간의 팽팽한 대립으로 당초 지난달 시행하려던 무서명거래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금융당국이 나서 카드사와 밴사가 적절히 분담하라고 의견을 조율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1일 카드사·밴사·밴대리점들은 5만원 이하 카드결제액에 대한 무서명거래를 이달 1일부터 시행하는 데 합의하고 밴대리점에 줘야 할 매입수수료는 카드사와 밴사가 추후 논의를 거쳐 적절히 배분하기로 했다.
무서명거래는 이달 본격 시행됐지만 핵심 논란은 전혀 해결되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카드사와 밴사는 밴대리점에 보존해줘야 할 수수료에 대해 이견이 여전히 크다. 당초 절반씩 하기로 논의가 진행됐지만 영세한 밴사 3곳이 매입수수료를 50% 부담하게 되면 매년 영업손실이 발생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카드사와 밴사의 논의는 교착 상태에 빠졌고 밴사들은 무서명거래 프로그램 수정에 소극적이 된 것이다. 결국 ‘말뿐인 무서명거래’가 발표돼 소비자들에게 혼란만 초래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밴대리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카드사와 밴사가 수수료 부담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상태에서 쫓기듯 무서명거래를 시행한 것이 문제”라며 “일부 가맹점에서 무서명거래가 가능하도록 프로그램을 교체해달라는 요청이 오고 있는데 밴사에서 수정된 프로그램을 주지 않아 우리도 혼란스럽다”고 설명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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