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랜만에 마음이 따듯해지는 뉴스가 보도됐다. 인천의 한 마트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 붙잡힌 30대 아버지와 12세 아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훔친 것은 우유 2팩과 사과 6개, 마실 것 몇 개. 금액으로 따지면 1만원 안팎이다. 아버지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다. 용서해달라”고 호소했다. 마트 주인은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경찰관은 가까운 식당으로 데려가 국밥을 한 그릇씩 사주고 훈방했다. 부자를 지켜보던 익명의 한 시민은 식당까지 따라와 20만원이 든 현금 봉투를 건네기도 했다.
방송 인터뷰에서 경찰관은 “아침·점심도 다 굶었다고 부자가 그러니까요.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소식이 전해진 후 이들 부자를 돕겠다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방송사 리포트에는 “자신도 울컥했다”며 경찰관과 익명의 시민을 칭찬하고 부자를 응원하는 댓글이 4,000개 이상 달렸다.
요즘 세상에도 여전히 밥 굶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돕겠다는 따듯한 이웃들 역시 적지 않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우리 사회에는 소외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고 이들을 챙겨야 할 의무가 있다.
밥은 삶이다. 배가 고파 마트에서 먹을 것을 훔친 부자나 매일 매일의 밥벌이를 위해 거리로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밥벌이에는 왕후장상이 따로 없다. 밥벌이의 무거움은 곧 삶의 무거움이다. 작가 김훈은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가 없다’고 썼다. 작가가 느낀 밥벌이의 고단함에 몸서리가 처진다.
오늘날 청년들은 밥벌이를 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운다. 회사에서 밥값은 하느냐는 물음에 중장년층은 말없이 운다. 밥벌이의 무게는 그래서 무겁다.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모르고서는 밥을 얘기할 가치가 없다. 오늘도 수많은 아버지·어머니가 밥벌이의 고단함을 버텨내고 있다. 가난이, 밥을 먹는 일이 자기 모멸이 돼서는 안 된다. 좌냐 우냐를 가르는 이념도 밥벌이 앞에서는 무력하다.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은 무능하다.
밥은 추억이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의 추억이 있다.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픈 군대 짬밥, 첫 데이트의 설렘에서 먹던 밥. 밥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추억이 담긴다. 같은 밥이라도 누구에게는 엄마의 사랑, 누구에게는 연인과의 이야기, 누구에게는 친구와의 추억이, 누구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들이 담겨 있다. 인천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부자에게도 경찰관이 사준 국밥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이 됐으리라.
밥은 하늘이자 서로 나눠 먹는 것이다. 시인 김지하는 ‘밥은 하늘입니다’는 시에서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중략)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밥을 같이 먹는 사람, 한 조직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식구(食口)라고 한다. 밥을 나눠 먹을 생각이 없다면 한 식탁에 얼굴을 마주 보고 앉을 수 없다. 누구와 함께 먹은 밥은 추억이 되고 누구와 함께하지 못한 밥은 슬픔이 된다. ‘혼밥’ 전성시대라고는 하지만 밥은 나눠 먹는 것이다. 다음주면 크리스마스다. 얼마 남지 않은 연말연시. 따듯한 밥을 함께 나누며 소외된 이웃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따듯한 말이 넘치는 사회를 바란다. /김정곤 탐사기획팀장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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