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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 박수치지만…의료체계는 '호흡곤란'

임상의사 수 OECD '최저'

'돈 되는' 곳에 의사들 몰려

진료과목 불균형 문제도 심각

의료자원 적재적소 배치 위해

인센티브 등 다양한 정책 시급





‘분만 산부인과 없는 시군구 33곳’ ‘권역 외상센터 전문의 채용 매년 미달’ ‘80세 이상 임상의사 7년 새 2배 증가’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의료취약 국가의 실태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방역체계의 위상이 한껏 높아진 한국 의료체계의 현주소다. ‘K방역’의 근간인 국내 의료체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역이나 진료과목 등에서 극심한 불균형이 그대로 드러난다. 방치하면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만큼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근본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2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사회보장정책분석(건강 부문)’을 보면 우리 의료자원은 곳곳에 모순을 품고 있다. 우선 국내 임상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인구 1,000명당 2.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4명)에 한참 못 미치지만 의사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연간 7,000건으로 OECD 평균(약 2,000건)보다 3배 이상 많다. 그나마 적은 의사들은 위치로는 대도시, 진료과목으로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돈 되는’ 부문으로 몰려들고 있다. 도심에 개원의가 넘치며 국내 1,000명당 병상은 12.3개로 OECD 평균(4.7개)의 2.5배를 웃돌아 36개국 중 두 번째로 많고 자기공명영상장치(MRI)는 29개국 중 네 번째로 풍부하다. 남는 병상과 의료기기는 과잉진료와 불필요한 검사로 이어져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다.

반면 분만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를 뜻하는 분만취약지는 지난해 33곳에 이르며 권역외상센터의 전담 전문의 채용은 매년 미달 행진을 이어간다. 그런데도 의사 수를 늘리거나 공공 부문 의사 수급을 위한 대책들은 의사들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진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정책연구센터장은 “의료인력 확대와 공공의료기반 확충이 시급하지만 제자리걸음”이라며 “보건소를 포함한 의료자원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80세 이상 현역의사 7년새 두배…고령화 문제도 수면위로


의료진이 22일 광주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학생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K방역’이 빛을 발하며 한국의 의료 수준 전반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수도권 등 대도시에서는 의료자원 과다에 따른 극심한 경쟁으로 과잉진료를 걱정하는 반면 생사를 넘나드는 외상센터는 의사를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등 우리의 의료체계 곳곳에서는 지나친 쏠림현상이 유발한 문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22일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국내 의사 수 부족에서 비롯한 불균형이 적잖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지방병원과 필수공공의료 부문의 의사 부족은 심각한 지경이다.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전국 평균 2.0명이지만 지역별로 서울은 3.1명에 달하는 반면 세종 0.9명, 경북 1.4명, 울산·충남 1.5명 등 일부 지역은 서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 간 비교 시 인구당 의사 수의 편차는 훨씬 커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산부인과를 비롯해 필수의료서비스로 분류되는 내과와 외과·소아과 진료과목이 없는 곳도 있다. 분만서비스를 제때 받기 어려운 취약 시군구 수는 지난 2016년 37곳, 2017년 34곳, 2019년 33곳으로 시간이 흘러도 뾰족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 소아청소년과가 없는 곳도 지난해 25개 지역으로 집계됐다. 권역외상센터는 2017년 283명 모집에 179명 채용에 그친 데 이어 2018년에는 283명 중 175명, 지난해 271명 중 186명 등으로 자리 세 곳 중 한 곳이 비어 있다. 국내 의료 수준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산모가 분만할 곳을 찾지 못해 아이와 엄마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고, 촌각을 다투는 중증외상환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게 우리 의료체계의 현실이다.

반대로 도심에서는 의사들이 너무 몰려 과잉진료를 걱정하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동 발간한 ‘2017년 기준 보건의료 질 통계’를 보면 만성질환에 따른 입원율은 노인인구가 많을수록 증가하고, 의사 수와 요양기관 수, 요양기관 병상 수와 같은 의료자원의 수가 많을수록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병상 수가 급증세를 보이는 요양병원은 10년 동안(2010~2019년) 병상 수 증가와 함께 경증환자 입원비율이 5.0%에서 11.8%로 높아지고 입원기간도 147일에서 174일로 대폭 늘었다. 병원 투자비용에 대한 수익실현 차원의 과잉진료를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와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특수 의료장비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과잉진료를 유발한다. 국내 의료기관이 보유한 MRI와 CT는 지난해 각각 1,656대, 2,049대로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5.9%, 1.8%씩 증가했다. MRI의 경우 인구 100만명당 29.1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4개)을 훨씬 웃돈다. 최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특수 의료장비 이용 급여비가 불어난 추세를 볼 때 의료기관이 고가의 장비를 통해 수익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예정처는 “적정 수가를 검토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불필요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사들의 고령화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 활동 중인 의사 수는 10만7,588명으로 이 가운데 65세 이상 의사 비중은 7.2%인 7,849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65세 이상 활동의사 수는 2012년 4,165명에서 7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80세 이상도 같은 기간 400명에서 824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의 의사는 경험이 많다는 장점이 있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고도의 의학지식을 필요로 하는데다 국민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만큼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은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3년마다 갱신해야 하지만 연간 8점(8시간)의 보수교육(사이버 강의도 운영)만으로 대체돼 의사의 자격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5년간 의사 면허 불법대여 사례 300명 중 60~70대가 133명으로 44.3%에 달하는 등 악용되는 경우도 관측된다.

국내 의료자원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여당에서는 공공의료대학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 공중보건장학제도 같은 수급대책을 내놓고 있다. 의사들의 적재적소 배치를 위해 더 많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우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내 의료체계의 문제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수명이나 낮은 사망률 등 국내 보건의료체계는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민간 의료체계의 근간을 유지하되 의사들이 부족한 곳에 대해서는 인센티브 제공 등으로 수급을 조절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대정원 확대 추진시도땐 의료계 "의사 수 많다" 항변




의료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학대학 정원 수를 늘리거나 공공보건의료대학을 설립하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특히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연간 3,058명으로 지난 2006년 지정된 숫자에서 멈춰 있는데도 의료계의 극심한 반발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우리나라 의사 수는 2.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적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OECD 평균은 3.4명이다. 특히 보건의료노조와 대한감염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에서 활동하는 감염내과 전문의는 275명에 불과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이마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반 집단발병의 진원지였던 대구·경북의 경우는 12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지역 누적 확진자가 현재 8,000명을 넘어서 감염내과 전문의 1명이 환자 700여명을 맡아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의료계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 면적이 좁아 오히려 단위면적당 의사 수는 많다고 항변한다. 국토가 넓은 다른 나라들보다 의료 접근성은 오히려 높다는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오는 2022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자 대한의사협회는 벌써부터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최고수위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공공의대에 관한 논의는 2018년 서남대가 폐교되면서 해당 의대 정원을 토대로 공공의료 전문가를 배출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공공의대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지 않아도 설립할 수 있지만 의료취약지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는 조건으로 입학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의료계는 반대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가 증폭제가 돼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발의된 만큼 통과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묵혀 있던 의대 정원, 공공의대 설립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긍정적이지만 올해 유난히 의료계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감염 우려로 병원을 찾는 발길이 끊기면서 개원가의 경영난이 극심해졌고 내년 3월에는 의협 회장 선거도 있어 강경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간호사도 인력난 '허덕'…그마저도 절반은 '장롱면허'


의사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환자를 관리할 간호사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7년 기준 국내 1,000명당 간호사 비율은 6.7명으로 의사와 마찬가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9.0명)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1인당 연간 진료 횟수와 환자 1인당 병원 전체 재원 일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간호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내에서 면허를 취득한 간호사의 절반가량이 일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OECD 회원국 중 면허 간호사 대비 임상 간호사 비율은 최하위권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간호사에 대한 수요는 확대되고 있는데 공급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간병비 부담 완화를 위해 도입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간병인과 보호자 등의 병실 상주를 제한하고 전문 간호인력 등이 입원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만큼 환자의 호응이 높다.

자연스럽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병상 수도 매년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서비스 수요가 높은 시골 지역은 간호인력 수급이 어려워 서비스를 도입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서울의 서비스 참여율이 20%를 넘고 인천의 경우 40%에 육박하는 반면 전북·전남·강원 등은 8% 수준에 그친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부터 유휴간호사 취업지원사업을 실시했다. 하지만 낮은 처우가 간호사들의 복직을 막는다. 복지부가 지난해 실시한 ‘의료직종별 근무여건 등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의 월평균 수입은 1,342만원인 반면 간호사는 329만원에 불과했다. 격무·부조리 등 열악한 근무환경도 간호사의 복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임진혁·이주원·우영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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