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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계산 실수? 시스템의 문제다

김현수 경제부장

유례없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오류는

외부에만 의존해온 시스템이 빚은 일

교수중심 위원회에 관료들 책임 방기

대선 캠프마다 곧 가득찰 폴리페서들

무책임한 공약 또 얼마나 쏟아낼는지

안도걸 기획재정부 2차관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0년 공공 기관 경영 평가 오류로 평가 결과를 수정 발표한 것에 관해 사과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윤상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 안도걸 2차관, 류형선 기획재정부 평가분석과장./연합뉴스




어이가 없다. 단순 계산 실수로 10개 공공 기관의 경영 평가 종합 등급이 바뀌었다. 임직원의 성과급 지급과 기관장 해임 여부 등 생사가 걸려 있는 경영 평가 결과가 무더기로 뒤집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사회적 가치 배점 적용 오류와 단순평가 점수 입력 오류 등 2건의 오류를 확인한 후 지난 25일 공공 기관 운영위원회를 다시 열고 경영 평가 결과를 수정 의결했다. 1983년 공공 기관 경영 평가 제도가 도입된 이후 유례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충격이다.

이번 사태가 단순 계산 실수로 넘어갈 일일까.

공공 기관 경영 평가 오류는 ‘외부 평가는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함정에서 비롯됐다. 기재부는 이번 오류가 독립적으로 평가를 실시하는 평가단 내부의 다단계 상호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결국 전문가 그룹이라고 꼽히는 외부 평가단의 문제일 뿐 기재부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핑계로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기재부 측은 평가에 개입할 여지가 없고 최종적인 검증은 평가 기관이 결과 통보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하지만 평가의 최종 책임은 기재부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외부 평가단에만 의존한 점은 되짚어볼 문제다. 공공 기관 평가단 108명은 대부분 대학교수들이다. 적절한 전문성을 보유하며 정부 입장에서 뒷탈이 없는 조합이긴 하다. 하지만 실무가 빠져버린 교수들과 연구원들만의 조직에 단순 계산은 작은 일로 치부되지 않았을까.

이번 평가 오류는 준정부 기관의 ‘사회적 가치 구현’ 배점에 있다. 문재인 정부 이후 새로 공공 기관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 사회적 가치 구현은 100점 중 11점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비계량지표 중 일자리 창출(1.5~4.5점), 균등한 기회와 사회 통합(1~3점), 재난 및 안전 관리(2~6점), 상생 협력 및 지역 발전(1~3점) 등은 기관별 특성을 반영해 배점을 가감해 설정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일부 평가위원이 기관별 다른 가중치를 반영하지 않아 배점 적용에 오류가 발생했다. 이번 사태로 해촉된 준정부 기관 평가단장은 지난해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의원·후보자 시절부터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였기에 ‘국정 방향이 사회적 가치 부분에 대해서 잘 실현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배점 실수는 사회적 가치 구현 평가에서 나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가 운영하는 위원회가 차고 넘치며 교수들은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라고 한다. 청와대·부처·산하기관·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장관·지자체장·기관장들의 자문기구도 위원회의 몫이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필요한 기획·심의·평가도 위원회가 맡았다. 관료들의 역할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떠맡은 위원회를 관리하는 일로 바뀌었다. 공정성과 객관성이란 함정에 빠져 관료들은 책임의 끈을 슬그머니 놓고 있는 셈이다.

공공 기관 경영 평가 오류는 시스템의 문제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내세운 교수 중심의 위원회는 관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무기력한 관료는 책임을 방기했다.

내년 3월로 예정된 대선이 막을 올렸다. 사정 기관인 감사원과 검찰의 수장이 바로 정치판으로 뛰어들고 유력 인사들이 앞다퉈 출마 선언을 하며 캠프를 차리고 있다. 여기저기 차려지는 대선 캠프의 주인공은 폴리페서로 불리는 교수들이다. 이들이 쏟아내는 공약들이 제대로 검증을 거칠지 의문이다. 누구보다 전문성과 윤리성을 바탕으로 공약을 만들어야 함에도 누구보다 표를 의식한 공약을 쏟아낸 주체가 캠프의 폴리페서들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책임지지 않는 폴리페서들의 뇌피셜 공약으로 나라를 망치지 말기 바란다. 정책도, 평가도 교수들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hs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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