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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초등생 때부터 프로그래밍에 빠져 살아…부모님이 사준 짝퉁 애플이 첫 컴퓨터"

김동건 데브캣 대표

초등생때 짝퉁 애플로 프로그래밍 빠져

10대 시절부터 컴퓨터 신동으로 유명

컴퓨터 싸들고 상경 경진대회에 참가

게임 스튜디오 창시자·韓 스타 PD돼

플레이가 이야기되는 게임 만들 것

게임업계 늙어가...후진 양성도 고민


‘마비노기의 아버지’ ‘한국형 게임 스튜디오의 창시자’ ‘한국 최고의 스타 PD’. 김동건(47·사진) 데브캣 대표를 수식하는 말이다. 김 대표가 지난 2004년 출시한 게임 ‘마비노기’는 경쟁과 전투 일변도이던 당시의 국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과 달리 가상세계 속의 ‘삶’을 구현하는 데 집중해 화제를 모았다. 마비노기 이용자들은 캠프파이어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음악을 연주하고,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양털을 깎고 나무를 베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벌었다. 게임 속 삶이 숨 쉬는 세계를 창조해 삶과 가상을 잇는 ‘메타버스’를 구현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새로운 게임에 이용자들은 열광했다. 누적 가입자는 620만 명을 넘어섰고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는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김동건 데브캣 대표가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본사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의 책상 뒤편에 붙어 있는 ‘마비노기 모바일’의 게임 장면을 담은 대형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성형주 기자




마비노기를 제작한 넥슨 데브캣 스튜디오는 국내 최초의 사내 독립형 게임 스튜디오인 동시에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게임 스튜디오다. 데브캣을 설립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17년간 이끌어온 ‘나크(김 대표의 닉네임)’는 게이머들에게 데브캣 그 자체다. 오랜 기간 넥슨 대표 스튜디오로 이름을 떨쳤던 데브캣은 지난해 말 분사해 독립 법인으로 재탄생했다. 네오플·위메프 창업자 허민 대표의 원더홀딩스와 넥슨이 각각 50%씩 출자했다. 김 대표는 류제일 원더피플 대표와 함께 신설 데브캣의 공동대표를 맡게 됐다. 21년 전 KAIST를 졸업하고 넥슨에 투신했던 청년이 자신의 브랜드를 건 스튜디오를 만들고 끝내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데브캣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대표직에 오른 후 언론과 진행한 첫 인터뷰다. 김 대표는 “독립 법인 설립으로 게임 제작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대표직을 맡으니 책임감과 압박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처음 독립 법인 설립 계획을 들었을 때는 당장 사무실 마련부터 걱정이 되더군요. 동시에 새롭게 열정이 충전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독립했다고 해서 원래 하던 일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경영 측면에서 류 대표님이 많은 도움을 주셔서 더 행복하게 게임 제작에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넥슨을 20년 넘게 다니며 관성처럼 생각하던 문화들이 있었는데 원더홀딩스와 협업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합니다.”

데브캣은 분사와 함께 경기도 판교 넥슨코리아를 떠나 테헤란로에 자리를 잡았다. 2004년 마비노기 출시 당시 넥슨이 위치했던 곳이다. 김 대표는 “김정주 넥슨 창립자가 좋은 게임이 많이 나오던 초기 넥슨의 기분으로 돌아가보자며 테헤란행을 권했다”며 “우연인지 당시 회식하던 단골 가게들이 근처에 있어서 과거의 열정이 많이 떠오른다”고 전했다.

데브캣은 독립과 함께 ‘플레이가 이야기가 되는 게임’을 비전으로 삼았다. 개발자가 만들어 일방향으로 전해주는 게임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마음껏 써내려갈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이용자의 이야기를 담은 게임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오랜 시간 살아남는다”며 “사람의 삶을 게임에 이식해 게임과 삶을 더욱 가깝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짝퉁’ 애플II로 빠져든 프로그래밍…영재에서 한국 대표 스타 PD로=김 대표의 사무실 한쪽에는 구형 애플 컴퓨터가 빼곡히 전시돼 있었다. 그 사이로 넥슨 20년 근속 상패와 마비노기 개발 백서, 마비노기 캐릭터 피겨가 보였다. 한국 게임 역사가 한곳에 담겨 있는 듯했다. 애플 PC는 김 대표의 ‘초심’을 상징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웃집에서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매일 프로그래밍에 빠져 살았습니다. 당시 컴퓨터를 한다는 것은 곧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뜻이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보다 못한 부모님이 청계천에서 불법 복제한 ‘짝퉁’ 애플II를 36만 원을 내고 사주셨습니다. 당시에도 거금이었지만 진품 애플II였다면 더욱 비쌌겠죠. 저는 지금도 퇴근 후에 구형 애플 기기로 게임을 만듭니다. 대규모 MMORPG 제작은 마비노기 모바일이 마지막일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제 게임 제작이 끝나지는 않을 거에요.”

김동건 데브캣 대표가 그의 사무실에 전시해놓은 구형 애플 컴퓨터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가 학창 시절 처음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기기들이다. /성형주 기자


초등학생 김동건은 프로그래밍과 함께 ‘가상세계’를 눈앞에 보여주는 게임에 사로잡혔다. 김 대표가 꼽은 ‘인생 게임’은 우주를 모험하는 게임 ‘썬독(Sundog·1984년 작)’이다. 히트를 친 게임은 아니지만 30년도 더 전에 도시와 행성, 은하와 우주를 게임에 구현했다. 김 대표는 “이 게임으로 무한한 우주를 탐험하는 상상을 했고 게임의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게 됐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10대 시절부터 ‘컴퓨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전국 컴퓨터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대상을 타고 KAIST 입학 자격을 얻었다. 그가 프로그래밍 영재로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다. “학창 시절을 대구에서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컴퓨터 경진 대회가 열리면 어머니가 컴퓨터를 파란 보자기에 싸매고 함께 상경하셨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첫 대회에 나갔는데 탈락했어요. 제가 실력이 부족했던 탓인데 어머니는 컴퓨터 성능이 나빠 떨어졌다며 분해하시더군요. 당시 8비트(bit) 컴퓨터를 쓰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바로 16비트 컴퓨터를 사주셨습니다. 신 나서 더 열심히 프로그래밍을 했죠.”



하지만 정작 김 대표가 KAIST에서 선택한 전공은 컴퓨터가 아닌 산업디자인이었다. 게임을 만드는 데 프로그래밍 실력뿐 아니라 디자인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대학원에서는 당시 개념조차 생소하던 HMI(인간·기계 상호작용)를 연구했다. HMI는 메타버스 핵심 요소인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의 기초 이론이다. 학창 시절부터 현실과 가상세계를 연결하는 데 온 관심을 쏟아왔던 것이다.

김 대표는 KAIST 재학 시절에 훗날 마비노기를 함께 만든 이은석 넥슨 디렉터와 게임을 제작해 이미 PC 통신에서 이름을 날렸다. 졸업 전인 1996년 제작한 ‘불기둥 크레센츠’는 삼성전자가 배급을 맡기도 했다. 당시 싹을 틔우던 게임계에서 ‘러브콜’이 온 것은 당연한 수순. 대학 선배인 김정주 창립자와 현재 엔젤투자자로 활동 중인 김상범 전 넥슨 이사가 KAIST에 찾아와 그를 ‘꼬셨다’.

“두 분 다 학교에서 알던 선배들이시죠. 밥 사주고 술 사주며 넥슨에 오라더군요. 졸업 후 게임 업계에 뛰어들 생각이었으니 좋다고 했죠. 김 전 이사가 게임 회사가 쉬는 날이 어디 있느냐며 신년부터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잔뜩 긴장해 2000년 1월 1일에 첫 출근을 했어요. 아무도 없고 문도 잠겨 있더라고요. 황당했죠.”

주 6일을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당시를 “가장 즐거웠던 시기”라고 추억한다. “넥슨 직원들은 게임 만드는 게 너무 재밌어서 퇴근을 안 했습니다. 저녁이면 같이 술 마시며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되겠다’ 싶으면 바로 구현해 즐겼죠. 그렇게 카트라이더 같은 넥슨 초기 대표작들이 나왔습니다.”

◇후진 양성 고민…“게임화되는 세상 후배들이 이끌어달라”=21년이 지난 현재 넥슨은 국내 최대 게임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3조 원에 달한다. 스튜디오 ‘간판’을 처음 달았을 때 데브캣의 인원은 20명 남짓이었지만 올해 채용을 마치면 200명을 넘어서게 된다. 김 대표 또한 풋내기 개발자에서 넥슨 ‘DNA’를 상징하는 인물로 올라섰다. 대표 명함을 가진 김동건의 최근 고민은 ‘후진 양성’이다. 현재 게임계의 20·30대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업계가 늙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벤처 1세대 창업자들이 50대가 되고 초기 핵심 개발·기획자들이 40대에 접어들면서 창의성이 떨어지고 조직은 갈수록 경직되고 있다는 것이다.

데브캣이 제작 중인 마비노기 모바일의 한 장면. 지난 2004년 출시한 원작 마비노기의 초기 모습을 모바일로 이식하는 것이 목표다. /사진 제공=넥슨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게임계에 40대가 없었습니다. 후배에게 물려주는 법을 배우지 못했죠. 대표가 되니 조직을 이끄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낍니다. 현재 내린 결론은 답답하더라도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급하니 맘에 안 들면 선배가 직접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후배가 성장할 기회를 은연중에 박탈했었다는 후회가 듭니다. 지금도 후배들이 하는 모든 작업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칭찬해주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려 합니다.”

김 대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업무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옛날에는 일을 너무 많이 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 데브캣은 스튜디오 시절부터 넥슨에서 가장 근무 환경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터뷰가 진행된 당일 사무실에 출근한 회사 직원은 김 대표를 포함해 서넛뿐이었다. 코로나19로 모두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게임 업계에 출퇴근 개념이 없던 시기에 정시 출퇴근을 처음 도입한 곳도 데브캣이다. 김 대표는 “넥슨 초기 인사팀에서는 개발자를 ‘괴짜’처럼 봤다”며 “‘개발자는 관리가 안 되는 족속’이라는 생각을 깨고 싶어 8시 출근 5시 퇴근 제도를 도입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가 내다보는 게임 업계의 미래는 어떨까. 그는 “게임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즐기고 소개하는 일도 직업이 될 수 있는 시대로 세상은 점점 게임화(gamification)되고 있다. 게임 회사는 더 이상 게임만 만드는 곳이 아니게 될 것”이라며 “미디어는 그 콘텐츠를 즐기며 자란 세대가 제작에 뛰어들 때 가장 크게 성장하는 만큼 게임과 함께 자라난 분들이 업계에 뛰어들어 이 미디어를 더욱 크게 성장시켜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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