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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서판길 한국뇌연구원장 "美 국립보건원 예산 19%(92억달러) 뇌과학 투자…선도 모험연구 장려"

[서경이 만난 사람] 서판길 한국뇌연구원장

■ 대담·정리=고광본 선임기자

DARPA처럼 장기투자·실패 용인 '최초·불가능 연구' 장려를"

美선 R&D과제 따내기 어렵지만 일단 뽑히면 자율성 보장 받아

산학연 유기적 협력관계 중요…'다학제 기반' 교과 개편도 필요

서판길 한국뇌연구원 원장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 공원에서 자신의 뇌를 가리키며 뇌산업 등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해 융합 교육과 함께 연구 현장의 도전적인 연구개발(R&D)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 오승현 기자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올해 예산 479억 달러 중 19.2%(91억 9000만 달러)를 뇌과학에 투자하며 선도 연구를 장려합니다. 최근에는 조 바이든 정부가 ‘팬데믹 대비 항바이러스 프로그램(APP)’의 일환으로 5년에 걸쳐 4조 5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모험 연구에 지원을 합니다.”

서판길(70·사진) 한국뇌연구원 원장은 22일 서울 광화문 서울경제 사옥에서 인터뷰를 갖고 “미국 연구자들은 한국에 비해 연구개발(R&D) 과제를 수주하기는 매우 힘들지만 일단 뽑히면 자율성을 부여 받아 성과를 낸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2007년 국가석학으로 지명된 데 이어 2020년 생명 현상 이해의 기본 개념인 ‘신호 전달 기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한 공으로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신호 전달의 핵심 효소인 포스포리파아제(PLC)를 세계 최초로 뇌에서 분리 정제하고 유전자를 클로닝(양친과 같은 유전자 조성을 가진 개체를 얻는 기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NIH 연구원 경험도 있는 서 원장은 “미국 등 선도국들은 정부에서 R&D 과제를 줄 때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기획하고 꼼꼼히 심사해 수월성을 따져 실력이 출중한 연구팀을 선별한다”며 “하지만 이후에는 믿고 맡겨 영향력이 큰 연구 성과를 도출하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우수한 교수들조차 국립과학재단(NSF)에 연 10여 차례 연구 과제를 신청하면 한 번가량 수주하나 일단 선정되면 자율성을 보장 받는다.

대담·정리=고광본 선임기자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가 5월부터 코로나19 이후 미래의 팬데믹 대응을 위해 시행하는 ‘팬데믹예방감염병예방센터(AViDD)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은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주도해 9개 연구 센터에 5년간 약 7600억 원을 지원하는데 퍼스트 무버(선도자)에게 지원한다. AViDD 프로그램에는 특이하게 미국 외 지역에서 유일하게 한국인 과학자(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가 포함돼 눈길을 끈다. 조 교수는 제프리 글렌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가 주도하는 스탠퍼드 AViDD 센터(7개 프로젝트 약 914억 원)에서 2개 프로젝트를 맡아 범용성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한다.

서 원장은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경우 불가능하다고 치부되는 연구에도 장기 투자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있다고 소개했다. 일단 ‘최초로 불가능한 연구를 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군사 공격에도 가동되는 컴퓨터 네트워크인 아르파넷이 나올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인터넷의 시발로 꼽힌다. DARPA의 연구 성과물 중에는 글로벌위성항법체계(GPS)나 전자레인지 등 무수한 사례가 있다. 그는 “DARPA는 연간 39억 달러의 예산 중 일부를 미지 영역 탐구, 불가능한 연구에 관한 도전 연구에 할애하고 있다”고 부러움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성실하게 연구했지만 실패하는 성실 실패를 용인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으나 실제 그런 환경이 구축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우리도 ‘최초·불가능’에 도전하는 연구 문화를 좀 더 키워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과 연구원에서 논문 표절이 이어지는 것은 정량 평가 문화가 지속된 데 따른 것이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4.46%로 세계 최고인 현실에서 남 따라하기 연구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올해 대학, 출연연구기관 등 공공 연구원, 기업에 지원하는 30조 원에 달하는 정부 R&D 과제의 선정과 평가 방식에 대해서도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획일적인 지원과 관리, 성과 중심의 평가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며 “연구 현장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모험을 감수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연구 과제를 준 뒤 최소한의 간섭과 유연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출연연에서 큰 성과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전체가 안 되면 특화된 센터라도 블록 펀딩(예산을 통으로 지원하고 각 기관과 연구 책임자에게 재량권을 주는 방식) 방식으로 연구비를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서 원장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쟁의 폐허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에 투자하며 약 70년 만에 원조 국가로 탈바꿈했다”며 “이제는 선진국을 추격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과감한 혁신을 통해 과학기술을 선도해야 한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해야 기술 패권 시대 국가의 생존을 도모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역점을 두는 반도체 못지 않게 뇌산업이나 합성생물학을 비롯한 바이오 분야가 매우 중요한 국가전략기술이라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 등을 예로 들며 산학연의 유기적 협력 생태계 조성도 강조했다. 기초연구를 사업화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다국적 제약 기업인 화이자를 예로 들면 매사추세츠주·뉴욕주·캘리포니아주에서 혁신적 R&D를 주도하는 대학·병원·연구소·재단 등과 협력해 기초연구를 산업화로 연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병원 안팎에 R&D 센터를 설립해 산학연이 함께 병원 등 현장 수요를 반영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서 원장은 “바이오헬스·바이오의료 산업이 연간 두자릿 수 성장을 하고 있으나 위험도 매우 크다”며 “산학연이 R&D 비용 부담을 줄이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도 대학과 연구소의 R&D가 기술이전과 창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구글·인텔·마이크로소프트·삼성·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 400여 개사가 이스라엘에 R&D 센터를 두고 현지의 산학연과 공동 연구를 하거나 기술이전, 벤처·스타트업 인수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 원장은 선도국형 연구 인력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박사후연구원(포닥)을 적극 활용하는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노벨 생리의학상을 비롯한 노벨 과학상의 경우 대부분 포닥이나 젊은 교수 시절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수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유능한 포닥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포닥에게 충분한 보상과 희망을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연간 약 9000명의 이공계·의약 계열 박사 배출자 중 국내 대학이나 연구소의 포닥으로 가는 경우는 1500여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2년가량 근무하는 데 그친다. 반면 미국은 연 5만여 명의 박사(절반이 외국인) 중 2만 5000여 명이 동부와 서부의 연구 중심 대학이나 NIH에서 4~5년씩 포닥을 한다. 따라서 연구 중심 대학이나 출연연의 특성에 맞는 전략 센터를 만들어 포닥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제안이다. ETRI의 디지털기술센터, 에너지기술연구원의 탄소중립센터처럼 뇌연구원도 뇌질환극복센터(가칭)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요즘은 국내 대학에서도 국내 박사를 교수로 많이 채용할 정도로 국내 박사 수준이 높아졌다”며 “국내 박사들이 대학과 연구소에서 포닥으로 근무하며 출중한 역량을 발휘하면 교수나 연구원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포항공대(POSTEC)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몸담았던 그는 교육 혁신과 핵심 인재 양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그는 “남처럼 해서는 일류가 될 수 없다”며 “학제를 넘나드는 유연하고 창의적 사고를 하는 인력을 키우고 선진국형 연구 인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다학제 기반의 교과 과정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스탠퍼드대는 학생이 여러 학문을 배우고 실무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방형 순환 대학 제도를 운영한다. 학과 간 장벽을 허물고 6년(학사+석사) 동안 자유롭게 캠퍼스와 산업 현장을 오갈 수 있게 하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정부의 인가를 받아 학과별 정원을 조정해야 하고 신설 대학원에서도 학과 간 주도권 싸움을 하는 우리와는 문화가 다르다”고 비교했다. 그러면서 현재 출연연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시스템도 좀 더 내실을 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 원장은 “미국 일리노이 의대는 3~4학년 때 공학·인문학·IT를 가르치는데 우리 대학도 융합 교육을 하는 방향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며 “대학과 연구소에서 젊은 연구자가 맘껏 뛸 수 있게 하는 등 국가 R&D 시스템의 대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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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경북 영덕 △서울대 수의학과 학사 △서울대 의학과 석·박사 △1985년 미국국립보건원(NIH) 생체 신호 전달 실험실 연구원 △1989년 POSTECH 생명과학과 교수 △1995년 미국 듀크대 의대 교환교수 △ 2010~2019년 UNIST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부총장, 융합연구원장 △2015년~ 이태리학술원 국외회원 △2018년~ 과기정통부 기초연구추진위원장 △2019년~ 교육부 BK+사업관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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