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요금 체계에서 불거진 한국전력 적자 사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재무 건전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전 적자 탓에 한전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도 함께 곤두박질치고 있는 탓이다. 한전 적자 구조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산은의 기업 대출 여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일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BIS 비율은 지난해 말 13.40%에서 올해 3월 말 13.11%까지 떨어졌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11.38%) 이후 가장 낮다. 2020년만 해도 16%에 육박하던 산은의 BIS 비율은 지난해 말 13%대 수준까지 주저앉았다. 금융 당국이 재무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권고하는 13%의 마지노선마저 무너질 위기에 놓인 셈이다.
산은의 BIS 비율이 곤두박질친 것은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가 직격탄이 됐다. 산은은 한전 지분 33%를 보유한 대주주다. 지분법 평가에 따라 한전 적자는 지분율만큼 산은의 손실로 계산된다. 강석훈 산은 회장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전의 1조 원 손실은 지분법상 산은 BIS 비율을 0.06%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문제는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의 재무 상태가 악화하면 대출 여력도 떨어져 기업 돈줄이 막힐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 업계의 한 인사는 “산은의 BIS 비율이 13% 초반까지 떨어지면서 일선 지점의 기업여신 담당 부서들은 리스크 한도에 여유가 없어 신규 여신은 못하고 기존 여신 연장이나 대환만 해주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한전 적자가 지난 한 해만 32조 원을 넘기면서 기업 지원 여력도 40조 원 넘게 감소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산은은 후순위채와 신주 발행 등을 통해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한전 적자 해소와 같은 근본적인 처방 없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예고한 한전의 경영 정상화 시점인 2026년까지는 산은도 발목 잡힐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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