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리던 16일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 트랙. 중국 비야디(BYD)의 중형 전기 세단 ‘씰’에 탑승해 가속 페달을 있는 힘껏 밟자 차량이 부드럽게 튀어나갔다. 최대 530마력, 제로백(0→100㎞) 3.8초의 강력한 출력에 몸 전체가 가라앉듯 시트 쪽으로 짓눌렸다. 차량 내부는 특유의 전기모터 소리만 들릴 뿐 고요했다. 연속 커브 구간에서는 전기차의 무거운 중량 탓에 쏠림 현상이 일부 느껴졌지만 씰은 바닥을 꽉 붙든 채 균형을 잃지 않았다.
씰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팔고 있는 BYD가 올 들어 국내에 두 번째로 선보이는 모델이다. 올해 초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토3’를 선보인 데 이어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한 주력 차종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BYD 관계자는 “양왕 등 BYD 산하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제외하면 씰이야말로 BYD의 기술력이 집약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씰의 진가는 일반 도로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다. 도심 구간에서는 전륜 구동 모터만 사용해 전비를 높이고, 속도를 낼 땐 후륜 모터까지 함께 가동해 사륜구동(AWD) 시스템 특유의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했다.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나 도로의 파인 부분을 지날 때도 차량에 적용된 주파수 가변 댐핑 서스펜션(FSD)이 하부 충격을 부드럽게 걸러줬다. 차선 변경이나 회전 구간에서도 스티어링 휠은 민첩하게 반응해 안정감을 줬다.
BYD가 양산형 모델 중 세계 최초로 적용한 ‘셀투바디(CTB)’ 기술도 주행 성능을 끌어올렸다. CTB는 배터리를 단순히 바닥에 얹는 게 아니라 차체 구조의 일부로 통합한 방식으로 비틀림 강성과 충돌 안전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지능형 토크 적응 제어(iTAC) 시스템도 전후방 차축 사이의 토크 전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휠 슬립을 줄이고 급격한 코너에서도 차량이 최적의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씰은 BYD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탑재돼 1회 충전으로 최대 407㎞를 주행할 수 있다.
공간 활용성도 뛰어나다. 2920㎜의 휠베이스에 평평한 바닥 설계를 더해 1열은 물론 2열의 레그룸과 헤드룸 모두 쾌적했다. 키 180㎝의 성인 남성이 2열에 탑승했을 때도 무릎이 앞좌석 시트와 부딪히지 않고 여유로웠다. 트렁크(400L)와 프렁크(53L) 공간도 실용성을 더해주는 요소다.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와 이중 접합 유리 덕분에 탁 트인 개방감도 느낄 수 있다.
안전 및 주행 보조 기능은 동급 최고 수준으로 설계됐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차선 이탈 방지(LDP), 사각지대 감지(BSD), 후방 충돌 방지, 유아 감지 알림(CPD) 등 주요 주행보조시스템(ADAS)은 물론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3D 서라운드 뷰 모니터도 기본 제공된다. 씰은 2023년 유로앤캡(EURO NCAP) 안전도 테스트 성인 탑승자 보호에서 89%, 어린이 탑승자 보호에서 87%의 점수를 기록하며 최고 등급인 ‘5스타’를 획득한 바 있다.
내부 디자인은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외부 디자인은 대체적으로 기존 출시 모델인 아토3에 비해 세련됐다는 평가가 많지만 도어 트림부터 시트까지 ‘옛날 차’에 탄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벨벳으로 된 대시보드 하단 수납장과 앞좌석 측면의 한자로 에어백을 표시한 문구 ‘기염’은 씰이 중국산 제품임을 상기시킨다. BYD 측은 “씰은 바다에서 영감을 받아 스티어링 휠(운전대)은 고래 꼬리, 크리스털 기어 레버는 물방울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국내 시장에 선보인 모델이 구형이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중국에는 지난해 8월 부분변경 모델을 공개했다. BYD측은 “국내에 들어오는 씰이 구형은 맞지만 올 해 생산이 이뤄진 2026년식 모델” 이라며 “중국에서 공개된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해외 어떤 나라에도 판매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이 BYD의 자율주행시스템인 ‘신의 눈’이 탑재됐다는 것인데 현행 국내법에 맞지 않아 수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씰은 국내에서 사륜구동(AWD) 단일 트림으로 판매된다. 가격은 친환경차 세제 혜택 적용 시 4690만 원이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까지 합치면 4000만 원 초반 대에 구매가 가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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