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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생물학적 족보와 母系혈통

“남성과 여성은 무슨 염색체로 구성되며 이들이 성별을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대해 설명하라.”

필자가 중학교 다닐 때 출제됐던 생물 시험문제이다. 생물 선생님은 아주 엄격했지만 실력이 있어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가르치셨다. 그러나 시험문제만은 항상 주관식으로 어렵고 까다롭게 냈다. 심도있게 공부하지 않으면 답안을 작성할 수 없었다.

비록 면소재지(충북 청원군 미원)의 산골 중학교였지만 그 선생님 덕분에 생물학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남성·여성은 무슨 염색체로 구성되나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생명과학에 대해서는 고등학교(청주고)에 진학,‘기십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생물 선생님을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수업중 학생들의 집중도가 떨어지면 “너희 자식들이 지금 쓰레기통에서 삐∼약, 삐∼약 아빠를 찾고 있다”고 자위행위를 언급, 학생들을 한바탕 웃게 하곤 했지만 이것은 필자에게 생명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는 동기를 불러 일으켰다. 늦게나마 그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표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아담을 먼저 만들고 그의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들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암컷이 먼저 생겨나고 나중에 부수적인 필요에 의해 수컷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훨씬 타당하다.

지구상에는 수컷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여태 암컷들끼리만 사는 생물종도 있다. 수컷들과 함께 살다가 결국 없애버리고 암컷들만 남아 살아가는 종들도 있다. 하지만 암컷들을 죄다 없애버리고 수컷들끼리만 사는 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천문학적인 정자수
남자가 일생 동안 만들 수 있는 정자 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200만개의 난모세포를 갖고 태어나는데 건강한 남자가 한번 사정하는 정자수의 몇 백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걸 다 쓰는 것도 아니고 35년 동안 4주마다 난자 하나씩 성숙하여 배란되니 평생 455개 정도를 사용할 뿐이다. 값싼 정자를 가능하면 많이 생산해 보다 여러 곳에 투자하려는 남성 전략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남녀의 성을 결정하는 성염색체(XY) 가운데 X염색체가 완전 해독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미국·영국·독일 공동연구팀은 영국 과학전문 주간지 <네이처> 최신호(3월 17일자)를 통해‘가장 특이한 유전자들의 집합체’로 불려온 X염색체가 1,098개의 유전자로 이뤄졌음을 밝혀냈다.

이 연구팀을 이끈 영국의 웰컴 트러스트 생어 연구소의 마크 로스 박사는 “X염색체의 유전자는 인간 게놈의 4%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3천199가지 유전질환의 9.6%인 307가지를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팀은 “최근까지만 해도 여성은 X염색체가 2개이기 때문에 이 중 하나는 활동하지 않는 염색체로 생각되어 왔으나 일부는 활동하는 유전자”라며 “바로 이 유전자가 성호르몬과 관계가 없는 남녀간 차이를 설명해 주는 것인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남성은 하나뿐인 X염색체
X염색체의 유전자 변이로 나타나는 색맹ㆍ자폐증ㆍ혈우병 같은 유전질환이 주로 남자에게 나타나는 것도 남성은 하나뿐인 X염색체에 발생한 결함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염색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성염색체인 X염색체의 완전한 해독은 유전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연구로 각종 여성 질환과 성적발달장애 원인규명 작업에도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X염색체와 관련된 질병으로는 혈우병, 자폐증을 비롯해 정신지체, 근육병, 난소장애, 간질, 빈혈, 비만, 청각장애 등 300여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의 핵에는 개개인의 특성을 결정하는 유전자들이 들어 있는 염색체가 모두 23쌍 있다. 이 중 한 쌍은 남녀를 결정하는 성염색체로 여성은 2개의 X염색체, 남자는 X염색체와 Y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X, Y는 염색체의 모양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이런 X염색체가 Y염색체보다 11배나 많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 여성의 비활동성 X염색체에 200∼300개의 유전자가 있으며, 이중 15%는 종전 학계의 인식과는 달리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연구팀이 밝혀냈다.

3백여개의 X염색체 관련 질병
두 성염색체의 유전자 수가 크게 다른 이유에 대해 마크 로스 박사는“성의 구별이 없던 생명체가 진화와 돌연변이를 거치면서 X와 Y성염색체가 생겼으며 이 가운데 X염색체는 진화를 거듭한 반면 Y염색체는 퇴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Y염색체는 78개의 유전자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처>는 지금까지 남녀간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 과학자들은 남녀 DNA 차이는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번 연구로 이러한 견해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보도했다.

성염색체가 많거나 적을 경우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조선 세조 때 ‘사방녀’라는 여자 종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여자에게 여자가 꼬여서 조사해보니 남자의 성기를 달고 있는 여자였다고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한 몸에 남자과 여자의 성을 가지는 ‘남녀추니’(우리말로 어지자지)가 등장한다. 불완전 남성과 여성 및 남녀추니의 역사는 꽤나 오래된 모양이다.

성염색체 분열 과정(감수분열)에서 부모중 한 사람의 성염색체가 분리되지 않고 그대로 태아에게 유전되어 이같은 사람들이 태어난다.

클라인펠터 증후군
우선 아버지쪽에서 비분리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 태아는 XXY 세개의 성염색체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클라인펠터 증후군’이라고 부르는데 이 경우 남자의 생식기를 가지지만 골반의 형태나 호르몬분비 양상은 여자이고, 수정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 올림픽 여자부 육상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죽은 후 장례과정에서 클라인펠터 증후군으로 밝혀진 바 있다.

어머니쪽에서 성염색체 비분리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는 성염색체 X하나만을 가진 태아가 태어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터너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여자의 생식기를 가지지만 호르몬 분비의 이상으로 가슴이 발달하지 않고 태아기 때 난소가 퇴화, 생식능력이 없다.

정상적으로 XX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지만 태아가‘부신생식 증후군’에 걸린 경우 자궁 속에서 안드로겐에 반응, 남자같이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즉, 염색체형은 여성이지만 외모는 남자와 같게 된다. 신체와 성의 변종은 이밖에도 많다. 그들은 대부분 생식능력이 없어 자손을 남기지 못한다. 우리의 족보와 달리 생물학적 족보도 모계로 이어진다.

생물의 계통을 밝히는 연구는 주로 암컷에서 암컷으로만 전달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 분석하기 때문이다. 즉 철저하게 암컷의 계보만을 거슬러 올라가 밝힌다는 얘기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인류전체의 조상으로 인정받던 ‘루시’라는 이름의 화석 할머니도 이를 통해 밝혔다. 모계 혈통의 기록이 바로 생물학적 족보인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우세하다는 증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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